2021. 1. 23. 14:59

미국에 와서 다짐했던 것 중 한가지가 “다치지 말자”였다. 일단, 미국에서 병원에 가는 비용은 한국에서 갈 때보다 훨씬 비싸다고 알고 있었고,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하지만, 지난 memorial day에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졌는데, 하필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고 본능적으로 비싼 핸드폰을 보호하려다 얼굴을 콘크리트에 정면으로 부딪혀 버렸다.

얼굴이 피투성이 였지만 다행히 단순 찰과상으로 보였고, 문제는 앞니중 하나가 1/4이 깨진 것이다. 매우 당황스러웠고, 이제 갈비를 못뜯겠구나라는 생각이 바보처럼 먼저 들었다.

 

이가 깨진 직후. 앞니의 1/4 정도가 깨졌다. 왼쪽 앞니도 아주 살짝 깨져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신경이 노출될 정도로 깨지지는 않았다(시리지 않았음).

미국인 친구에게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니 평소 다니던 치과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당일날이 휴일이었기 때문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의사 선생님께 곧바로 전화가 왔다.

따뜻한 소금물로 가글을 하고, 내일 진료를 받으러 오라는 것이다.

 

다음날 진료를 받으러 가니, 입술이 부어서 당장은 진료를 못한다고, 2주일 정도는 기다렸다가 치료를 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매일 붓기를 빨리 가라앉히기 위해 Advil을 두 알씩 먹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2주동안은 깨진 이로 살았는데, 생각보다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빵 먹을 때 잘라서 먹고, 사과도 잘라서 먹고, 적응이 되니 그럭저럭 살만 했다.

 

그 2주동안 당연히 폭풍 검색을 하였다. 정리를 해보면

  • 앞니가 깨졌을 때 정도에 따라서 레진 충진 치료와 크라운 치료를 할 수 있음
  • 레진은 이를 깎는 것을 최소로 하는 반면 쉽게 깨져서 길지 않은 기간 내에 재치료를 받을 수도 있음
  • 크라운 치료가 오래가고 튼튼하지만 이를 지금 깨진 정도보다 더 깎아야 함
  • 이를 깎으면, 신경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노출이 된다면 신경치료까지 겸해야 함
  • 크라운 치료를 선택할 경우 재질을 선택할 수 있는데, 세라믹(도자기), 금, 지르코니아 등이 있음(앞니니깐 금은 제외)

이제 치료를 받기 위해 치과를 방문하니 폭풍 검색이 무색하게, 나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아주 당연스럽게 크라운을 하게 되었다(나중에 물어보니 재질은 지르코니아라고 했다).

이의 본을 뜨고 임시 치아를 달아 주신뒤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하셨다.

이를 깎을 때 사실 거울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깎였는지 알지 못했는데, 잠깐 의사 선생님이 한눈을 판 사이 손목시계에 비쳐 볼 수 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드라큘라처럼 깎아 놓으셨다. 하..


일주일 뒤 진짜 크라운을 달게 되었고, 내 기억으로는 거의 곧바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혀로 만져보았을 때, 미끌미끌해서 좀 기분이 이상한 것 빼고는 나쁘지 않았다.


비용은 보험을 끼고 $382.80이 나왔다.


레진 두개를 한 것(깨진 앞니 양 옆으로 아주 조금씩 깨졌었음)이 $14.90씩 총 $29.80, 크라운 비용이 $343.00였다. 한국에서 크라운 했다면 40~50만원 정도가 나오니, 비용은 보험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 하에 거의 동등하다고 볼 수 있다.

6개월 이상 사용 후기

지난 5월에 치료를 받고 지금은 해가 지나 1월이다.

결론적으로 조금도 불편함이 없다.

 

사과도 아랫니에 힘을 더 주기는 하지만 베어먹을 수 있는 정도이고, 라면같은 것도 전혀 문제없이 잘 먹고 있다. 다만 의사 선생님이 아몬드처럼 단단한 것을 앞니로 먹지 말라고 하셔서, 아몬드나 갈비같은 것은 아직 시도해보지도 않았다.

 

거울로 보면, 가짜 이인 것이 조금도 티나지 않는다.

크라운한 걸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절대 어떤 이가 크라운인지 모른다.

 

의사 선생님이 우려한 것이 이를 깎았기 때문에, 신경이 노출될 경우 신경치료를 할 수도 있다고 하였는데, 아직까지 이가 시리거나 한 것은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처럼 레진과 크라운 중 고민을 하는 분들을 위해서이다.

 

의사 선생님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과잉진료가 걱정된다면 여러 군데에서 진료를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과잉진료라고 의심이 되지 않는 상황에 크라운을 추천받았을 때는 크라운을 씌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끝으로 앞니가 깨진 상태에서 이 글을 보고 계실 텐데(아마도 타국에서), 다시 라면을 끊어 먹을 수 있을테니 걱정을 크게 안하셔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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